2017년 4월 24일 월요일

생일즈음에.








난생 처음으로 학술대회에 참여했다. 공동이긴 하지만 발표라는 것도 해봤다. 무엇보다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들, 교수님과 함께라 더 뜻깊은 시간이었다. (교수님이 이야기한 적도 있는 '내가 하는 일이 헛되지만은 않군'을 확인하는 차원에서) 게다가 공부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, 책이나 언론에서만 보던 분들도 봤다. 

생일이라고 남친께서 통장을 탈탈 털어 서울나들이에 나섰다. 두 번이나 놓쳤던 코린 배일리 래의 공연도 본 것만도 기절할 일인데 무엇보다 남자친구(곧 남편)랑 페스티벌에를 왔다니 난 이제 여한이 없어ㅋㅋ 라며 오빠랑 키득댔다. 전혀 취향에 맞지 않는데도 티켓도 사주고 비행기도 끊어주고 예닐곱시간 눌러앉아준 조덜트의 그 마음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힘든 것. 

그리고 오늘은 좀처럼 갈일이 없는 압구정에서 점심도 먹고, 산책도 하고, 커피도 마시고, 또 백화점에 들러 웨딩링 사이즈도 재고, 카메라 모델도 다시 확인하고. 바쁜 날이었다. 

학회에서 쟁쟁한 선생들의 발표를 들으며
코린 배일리 래의 라이브를 들으며 
오빠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 
살아있는 건 정말 좋은 거야, 새삼 되새기는 날이었다. 끝.





2017년 4월 2일 일요일

빈 문서


어제는 학회 준비에 요일식당-시옷서점-생각의 숲x생각의 술로 이어지는 일정. 
오늘은 앉아서 줄곧 해야 하는 일들을 쳐낼 생각이었으나 빈 문서들은 빈 채로 끝났다. 


2017년 3월 23일 목요일

2017년 3월 2일 목요일

어떤 책

- 지난 학기 교수님댁에 갔을 때 사모님을 뵙고 '동반자' 혹은 '동지'를 만난다는 표현을 실감했다. 같이 연구도 하고 책도 쓰다니. (사람 일은 모르지만) 나와 오빠는 곧 결혼으로 맺어질 반려자이긴 해도 관심사가 비슷하지는 않아서 공동의 연구물을 내놓을 일이 없을 것 같아 더 놀라웠고 한편으론 부러웠다.

- 그런 사모님이 첫 책을 내셨다고 교수님께서 건네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받아왔다. 퇴근 무렵에 책을 펼쳤다가 아주 혼났다. 눈물 범벅이 된 채로 집에 겨우 돌아왔다. 그 날 저녁 내내 오빠에게도 얘기했고, 며칠 째 여운이 남아 어직도 얼얼하다. 20 여 년을 묵혔던 그 속을 헤아려 보는 그런 이유도 있지만, 사모님이 잃어버렸다는 그 딸의 심정에 더 마음이 갔다. 

- 나의 엄마 아빠는 서로를 너무나 사랑했을지 몰라도 부모가 되기엔 조금 일렀던 게 아닐까. 그 탓에 나는 외가에서 크며 반쪽일 수밖에 없었다. 외가의 성향으로 설명되지 않는 나의 기질들을 물을 곳이 없었다. 오히려 외가의 식구들과 닮은 점을 자꾸 강조하며 나는 이곳에 있어도 되는 존재라고 스스로 각인해갔다. 결국에 다 커서도, 서른에 가까워서도 미숙아다. 

- 이제는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기 때문에 들추지 않았던, 멀고도 가까운 엄마와 아빠의 존재를 새삼 떠올리게 됐다. 사모님의 책 덕분에. 


2017년 1월 1일 일요일

하루 늦은 연말결산

언젠간 꼭 가보고 싶었던 태국 여행(1월), 너무나 힘들 때 나를 지켜준 Bon Iver 내한 공연(2월), 대학원 첫 학기 시작(3월), 기념일로 바빴던 (4월), 조카의 탄생(5월), 벼르던 서울 나들이(6월), 멘붕과 함께 첫 학기 마무리(7월), 뜻밖의 도쿄 출장과 소연이와 상해 여행(8월), 멘탈 탈곡 두 번째 학기 시작(9월), 결혼 D-1년(10월), 상견례(11월), 정말 오래 벼르던 통영 여행, 두 번째 학기 마무리(12월)

스물여덟, 참 벅찬 해였다. 5년이나 그토록 고민했던 대학원 진학과 일생의 대사인 결혼 추진까지. 여태껏 늘 그랬듯 때맞춰 주어진 선택지에서 고르는 일이 아니었다. 회사일, 연애, 공부, 그리고 개인적인 관심사와 인간 관계까지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능력밖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. 겸손하다 못해 어깨가 없어질 것 같았다. ㅋㅋ 학교에선 스스로의 수준미달을 마주해야했고, 회사에선 잘못한 일도 없는데 눈치를 보느라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. 시간이 없으니 마음의 여유도 없고, 돈으로 때우려다보니 남는 것도 없던 그런 해... 그럼에도 사람이 주는 희망, 배움의 기쁨, 일에서 느끼는 보람이 한 해를 버티게 했다. 고마운 일이다.